왜 도메인 전문성만으로는 더 이상 해자가 아닌가
3주간 실리콘밸리를 돌고 온 한 현장 리포트는 시장이 프론티어 랩으로 응축되는 흐름을 Time Gap × Domain Gap이라는 두 축으로 정리합니다. 시간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남는 것은 도메인 격차뿐이라는 관찰입니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결론입니다. 모델은 누구나 쓰니 결국 그 도메인을 깊이 아는 사람이 해자를 갖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프론티어 랩들은 바로 그 도메인을 직접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코딩, 리걸, 바이오. 도메인을 고르는 기준조차 명확합니다. RLVR, 즉 검증 가능한 보상으로 강화학습이 돌 수 있는 도메인을 먼저 노립니다. 방식도 노골적입니다. 전문가의 암묵지를 post-train 데이터로 사들이는 것입니다. 사람 머릿속에만 있던 판단을 돈으로 사서 모델 안에 넣습니다.
그러면 도메인 전문성은 해자가 아니라 매입 대상이 됩니다. 20년간 쌓은 판단이 데이터셋으로 팔려 모델에 흡수되는 순간, '그 도메인을 안다'는 사실만으로는 방어선이 되지 못합니다.
AI는 도메인에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가
바이오는 이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영역입니다. 전통 연구자들의 회의론이 여전한 가운데, OpenCRISPR는 AI가 그 도메인에서 이미 실질적 혁신을 냈다는 증거로 제시됩니다. 유전자 편집 도구를 AI가 새로 설계해낸 것이죠.
더 인상적인 장면은 개인 차원에서 나옵니다. 누군가는 Codex로 사흘 만에 개인 유전체 분석 파이프라인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이라면 도메인 지식과 엔지니어링을 오래 쌓아야 손댈 수 있던 일이, 도구를 쥔 사람에게는 사흘로 압축된 것입니다. 도메인 진입 비용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질문이 뒤집힌다 — 누가 격차를 먼저 닫는가
그래서 리포트는 도발적인 프레임을 던집니다. 도메인 전문가를 설득할 것인가, 이길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가 지금까지 묻던 방향을 뒤집습니다. 지금까지는 '도메인 전문가가 AI를 배울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승부는 반대편에 있을지 모릅니다.
두 개의 속도가 경쟁합니다. 도메인 전문가가 AI에 익숙해지는 속도와, AI를 손에 쥔 사람이 도메인 지식을 따라잡는 속도. 도메인 지식이 데이터로 매입되고 도구로 사흘 만에 재현되는 세계에서는 후자의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릅니다. 해자는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이 격차를 누가 먼저 닫느냐'에서 갈립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해자는 무엇인가
이 관점을 따라가면 moat의 정의가 바뀝니다. 정적인 자산(도메인 지식, 모델 접근성)에서 동적인 속도(격차를 닫는 능력)로 이동합니다. 아는 것은 복제되고 매입되지만, 자기 격차를 빠르게 닫는 습관은 쉽게 복제되지 않습니다.
AX(AI 전환)의 관점에서 이는 구체적인 처방으로 이어집니다. 도메인 전문가라면 자기가 아는 흐름을 AI라는 언어로 옮기는 속도를 최우선에 둬야 합니다. 흐름을 알면서도 도구를 거부하면, 그 지식이 post-train 데이터로 팔려 나가는 사이 자기만 뒤처집니다. 반대로 AI 네이티브라면 도메인에 대한 겸손이 해자가 됩니다. 사흘 만에 파이프라인은 만들어도, 그 도메인이 진짜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여전히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 질문에 확정된 답은 없습니다. 다만 해자가 소유에서 속도로 옮겨가고 있다는 감각만은 분명합니다. 어느 쪽이 먼저 격차를 닫는지, 그 결과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