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s·2026-07-18

AI 워싱이란 무엇이고, 감원의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AI 워싱은 기업이 실적 압박이나 조직 슬림화 같은 진짜 이유를 감춘 채 감원을 AI 탓으로 포장하는 행위를 말한다. 미국에서 'AI 때문'이라 명시된 감원은 올 상반기에만 10만 건을 넘었지만, CFO 700명을 대상으로 한 익명 조사에서는 90%가 'AI가 고용에 미친 영향은 사실상 없었다'고 답했다. 진짜 벌어지고 있는 일은 AI가 사람을 직접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다루는 소수가 여러 사람 몫을 해내면서 특히 신입·저경력자의 채용 문이 닫히고 있는 현상이다.

AI 워싱이란 무엇인가

워싱(washing)은 원래 환경 분야의 '그린워싱'에서 온 말이다. 실제로는 친환경이 아닌데 친환경인 척 포장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AI 워싱도 같은 구조다. 처음에는 'AI 기술이 없으면서 있는 척 과대포장한다'는 뜻으로 쓰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인력 감축의 진짜 이유를 감추고 AI를 핑계로 내세운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이 용어가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걸 오픈AI 샘 올트먼 CEO 본인이 인정했다. 그는 "AI washing is real(AI 워싱은 실제로 존재한다)"이라고 말하며, 기업들이 AI를 핑계로 해고를 위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언젠가는 기술이 실제로 일자리를 대체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덧붙였다.

숫자로 보는 AI 감원 논란

미국의 감원 통계를 30년 넘게 집계해 온 컨설팅사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Challenger, Gray & Christma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AI 때문'이라고 경영진이 직접 밝힌 감원은 10만 건을 넘었다. 작년 한 해 전체 수치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이고, 이 회사가 2023년부터 AI를 별도 감원 사유로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AI가 미국 감원 사유 1위에 오른 것도 처음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미국 듀크대학교와 연방준비은행 연구진이 미국 주요 기업 CFO 700명을 익명으로 조사한 결과는 정반대였다. 응답자의 90%가 "지난 1년간 AI가 우리 회사 고용에 미친 영향은 사실상 없었다"고 답했고, 89%는 "생산성에도 아직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고 답했다. 감원 사유로는 AI가 압도적 1위인데, 정작 그 감원을 결정한 경영진 스스로는 AI의 실질적 영향이 크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감원한 회사들의 사정을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라클은 최근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넘게 늘었고 수주잔고는 300% 증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도 대규모 인원을 감원하면서 동시에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냈다. 원래 대규모 감원은 실적이 나쁠 때 하는 결정인데, 지금 감원을 주도하는 빅테크들의 실적은 오히려 역대급으로 좋다.

기업들은 왜 감원에 AI를 갖다 붙이나

첫째는 돈이다. 빅테크들은 AI 칩과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메타 한 곳만 해도 올해 AI에 쏟겠다고 밝힌 투자금이 작년과 재작년 투자금을 합친 것보다 많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메타 네 회사가 올해 AI 인프라에 쓰겠다고 밝힌 투자금 합계는 작년의 거의 두 배에 이른다. 이 돈을 외부에서 조달하거나 아껴서라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빨리 손댈 수 있는 비용이 인건비다.

둘째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의 과잉 채용이다. 비대면 온라인 사업이 급성장하던 시기에 많은 기업이 개발자에게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대규모로 채용했다. 그때 불어난 조직의 거품을 걷어내야 하는 시점에 마침 AI 붐이 겹치면서, 원래 필요했던 군살 빼기에 AI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붙었다.

셋째는 투자자 압박이다. IT 업계에는 2015년 실리콘밸리 벤처투자가가 만든 '40의 법칙(Rule of 40)'이라는 기준이 있다. 매출 성장률과 이익률을 더한 값이 40을 넘어야 좋은 기업으로 평가받는다는 개념이다. 매출이 매년 40%씩 고속 성장하면 이익이 0이어도 용서받지만, 성장률이 20%로 둔화하면 이익률을 20%까지 끌어올려야 40을 맞출 수 있다. 막대한 AI 투자금을 계속 조달해야 하는 상장 빅테크일수록 투자자에게 '이익률 개선'을 보여줘야 하는 압박이 크고, 경영진이 당장 손댈 수 있는 카드는 결국 인건비다.

AI로 대체했다가 다시 사람을 부른 회사들 — AI 부메랑 해고

무리하게 감원한 회사들 중 일부는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는 2024년 오픈AI 기술을 도입해 고객 상담 업무를 맡기면서 "AI 챗봇이 상담원 700명 몫을 한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실제로 맡겨 보니 화난 고객을 진정시키지 못했고, 수수료나 환불 정책처럼 중요한 답변에서 AI가 확신에 찬 말투로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환각(hallucination) 문제가 반복됐다. 고객 만족도가 떨어지자 클라르나는 1년 만에 사람을 다시 뽑기 시작했다.

자동차 회사 포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품질검사 엔지니어들을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그 업무를 AI에 맡겼는데, AI가 결함을 놓치는 일이 반복되면서 자동차 리콜이 급증했다. 미세한 품질 차이를 알아채는 베테랑 엔지니어의 감각은 매뉴얼로 옮길 수 없었고, 애초에 그 감각을 AI에 학습시킬 데이터 자체가 없었다. 결국 포드는 숙련 엔지니어 350명을 다시 불렀고, 그제야 리콜 비용이 줄었다.

이런 재채용은 공짜가 아니다. 채용 비용과 교육 비용이 다시 들고, 한 번 내보낸 사람을 다시 데려오려면 나갈 때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비용을 아끼려고 사람을 내보냈다가 결과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치르는 셈이다.

그런데 감원 워싱, 법적으로 문제는 없을까

미국은 '임의고용 원칙(employment-at-will)'에 따라 특별한 이유 없이도 고용 관계를 끝낼 수 있는 나라다. 인종·성별 차별이나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성 해고는 엄격히 금지되지만, 'AI 때문에 감원한다'는 이유 자체는 노동법 위반이 아니다. 다만 직원 100인 이상 기업이 대규모 감원을 할 때는 최소 60일 전 서면 통보 같은 절차적 의무는 있다.

노동법으로는 문제가 없어도 다른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과거 실제로는 AI를 쓰지 않으면서 "AI로 투자한다"고 거짓 홍보해 투자자를 끌어모은 자산운용사들을 증권사기로 처벌한 적이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감원 워싱'도 비슷한 위험을 안고 있다고 본다. 감원 사유를 허위로 공시해 주가에 영향을 줬다면, 이 역시 투자자를 기만한 증권사기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 이 사유로 처벌된 사례는 없지만, 주가에 큰 영향을 준 경우라면 법적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AI가 실제로 사람을 대체한 경우는 없나

있다. 스탠포드 대학이 매년 발간하는 400쪽 분량의 'AI 인덱스 리포트'는 학술 연구를 근거로 구체적인 생산성 수치를 제시한다. AI를 도입한 회계 업무는 생산성이 55% 향상됐고, 마케팅은 50%, 콘텐츠 제작은 최대 200%까지 향상됐다. 고객 상담 업무도 다소 빨라졌다. 반면 숙련된 개발자의 생산성은 오히려 느려졌다는 결과도 함께 나왔다.

같은 리포트의 또 다른 그래프가 이 글의 핵심을 보여준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콜센터 상담 같은 고객서비스 직군 모두에서, 2023년 이전까지는 전 연령대의 고용이 함께 늘었다. 그런데 2023년부터 22~25세 사회초년생의 고용 곡선만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26~30살의 저경력층도 고용이 정체됐다. 반면 30대·40대·50대 이상 숙련자의 고용은 계속 늘었다.

결국 AI가 아니라 'AI를 잘 쓰는 사람'이 대체하고 있다

이 두 그래프를 겹쳐 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실체가 드러난다. AI가 사람 자리를 통째로 차지한 게 아니다. 회사에 남은 숙련자 중 AI 도구를 잘 다루는 소수가 회계·마케팅·콘텐츠 같은 업무에서 원래 여러 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 해내기 시작했고, 그만큼 새로 뽑아야 했던 신입·저경력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AI가 사람을 대체한다'보다 'AI를 잘 쓰는 사람이 AI를 못 쓰는 사람을 대체한다'가 지금 벌어지는 일을 더 정확히 설명하는 문장이다.

이 흐름을 그대로 방치하면 문제는 지금 세대의 취업난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 초년생이 실무를 배우며 올라서는 경력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지면, 몇 년 뒤 그 자리를 채워야 할 중간 경력자와 미래의 전문가 집단 자체가 비게 된다. 지금 기업이 AI를 감원의 핑계로 쓰든 실제 이유로 쓰든, 개인 입장에서 결론은 같다. 조직이 줄어드는 인원 안에서 살아남는 기준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판단력과 함께, AI를 도구로 실제 다룰 줄 아는 능력이 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