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직접 개발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리트머스는 이커머스 데이터 분석 솔루션과 외주 개발을 하는 약 60명 규모의 회사입니다. 하우와이 AI 팟캐스트에 출연한 김응진 대표가 '파트너 플랫폼'이라는 것을 소개했는데, 여기서 고객이 직접 개발한다는 말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파트너 플랫폼에서는 고객이 자기 서비스 화면에서 고치고 싶은 요소(버튼, 문구, 레이아웃)를 클릭해 선택하고 코멘트를 남깁니다. '이 부분을 이렇게 바꿔 달라'고 적으면, 그 코멘트가 곧바로 '티켓'이 됩니다. 티켓이란 하나의 작업 단위, 개발 요청서 한 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티켓이 생기면 에이전트가 붙습니다. 에이전트는 사람 대신 코드를 읽고 고치고 배포까지 하는 AI 프로그램입니다. 리트머스에서는 CRH라는 이름의 에이전트가 요청을 확인하고, 코드를 수정하고, 작업을 완료 상태로 바꿉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개발자에게 말로 요청할 필요 없이 화면에서 클릭과 코멘트만 하면 개발이 굴러가는 셈입니다. 사실상 고객이 셀프로 개발하는 구조입니다.
왜 PM 게이트가 필요한가 — 셀프 개발이 아니라 소통 도구
그런데 여기에는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티켓이 들어오는 대로 에이전트가 바로 실행해도 되지만, 프로젝트가 중기·후기로 가면 PM(프로젝트 매니저)이 게이트를 지킵니다. 게이트란 통과 여부를 사람이 결정하는 관문입니다.
PM은 티켓을 보고 세 가지 중 하나를 고릅니다. 바로 반영하거나, 검토 후 반영하거나(PR로 미리보기), 아예 막고 대기시킵니다. PR은 Pull Request의 약자로, 코드 변경을 바로 적용하지 않고 '이렇게 바꿀 건데 괜찮은가요'를 먼저 보여주는 미리보기 절차입니다. 리트머스는 티켓을 바로 병합하지 않고 브랜치를 바꿔 PR을 날리는 식으로 게이트를 겁니다.
왜 막아야 할까요. 고객이 원한다고 다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 외주 프로젝트는 같은 금액이라도 1년 전보다 복잡도가 세 배 이상 높아졌고, 기술적으로 구현은 되는데 정책이나 사업 목적과 안 맞는 요청이 자주 나옵니다. 그것을 걸러 커트하거나 조정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 몫입니다. 그래서 이 플랫폼은 100% 셀프 개발 도구가 아니라, 고객과 개발사가 같은 화면을 보며 소통하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RFP를 100% 다 만들지 않는다는 선택
저(SH Consulting)는 이 구조를 보며 제 방식에 확신을 얻었습니다. RFP는 Request For Proposal의 약자로, 고객이 '이런 걸 만들어 달라'고 정리한 제안 요청서이자 요구사항 문서입니다. 보통 외주 개발사는 RFP에 적힌 것을 100% 다 구현해 완성품으로 넘깁니다.
저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핵심 80%를 만들어 혼자 돌아가게 하고, 남은 20%는 고객이 직접 마무리하도록 남깁니다. 다 만들어 주면 고객은 사소한 수정 하나에도 매번 개발사를 불러야 하고, 그 종속이 시간과 비용으로 쌓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80%란 '혼자 굴러가는 뼈대'까지를 말합니다. 나머지 20%(세부 문구, 화면 미세조정, 새 항목 추가 같은 것)는 고객이 스스로 손댈 수 있는 영역으로 남깁니다. 완성품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이어받아 키울 수 있는 살아있는 시스템을 건네는 것입니다.
AX 교육이 왜 마무리를 대신하나
남은 20%를 고객이 직접 하려면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AX 교육을 함께 제공합니다. AX는 AI Transformation의 약자로, 조직이나 개인이 일하는 방식을 AI 중심으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고객이 AI 도구로 자기 서비스를 스스로 고치고 유지보수하는 법'을 익히는 것을 뜻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고객이 클로드 코드나 코덱스 같은 AI 코딩 도구로 화면을 고치고, 문구를 바꾸고, 간단한 기능을 붙이는 흐름을 손에 익히게 합니다. 리트머스가 고객에게 파트너 플랫폼(클릭 → 코멘트 → 티켓)을 쥐여준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개발자에게 말로 부탁하는 대신, 고객이 직접 손대는 경로를 여는 것입니다.
효과는 종속에서 자립으로의 전환입니다. 다 만들어 주면 고객은 매번 저를 부르지만, 스스로 짓는 법을 익히면 자기 손으로 굴립니다. 유지보수 비용이 줄고, 고객은 자기 서비스의 주인이 됩니다. 그러면 개발사는 '완성품 납품업체'가 아니라 '고객을 자립시키는 교육·설계 파트너'가 됩니다.
AI 시대, 컨설턴트의 값은 어디로 옮겨가나
AI가 코드를 점점 잘 짜면서 개발 그 자체는 흔한 능력이 되어 갑니다. 고객도 AI로 직접 개발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개발사가 파는 것은 '코드를 짜 주는 노동'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옮겨가는 자리는 두 곳입니다. 첫째는 판단입니다. 무엇을 반영하고 무엇을 막을지, 어떤 요청이 사업 목적에 맞고 어떤 것이 리스크인지 결정하는 게이트키퍼 역할입니다. 둘째는 교육입니다. 고객이 스스로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둘 다 AI가 대신 못 하는, 사람과 도메인 이해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리트머스 대표는 세일즈·PM·개발자 구분이 사라지고 모두 '컨설턴트'라는 하나의 직군으로 합쳐질 것이라고 봤습니다. 저도 같은 방향을 봅니다. 실행은 AI와 고객에게 넘기고, 사람은 판단·게이트·교육으로 올라섭니다. 당신의 일에서도 '실행'과 '판단'을 분리해 보십시오. 실행은 자동화하거나 위임하고, 판단하는 자리에 자신을 남기는 것 — 그것이 AI 시대의 생존 설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