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옥시아 낸드 투자 신중론과 반도체 슈퍼사이클 논쟁
일본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가 이날 시가총액 기준 일본 증시 1위 자리를 다시 탈환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계열 닛케이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키옥시아는 향후 3년간 연평균 약 4700억엔을 설비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2022년 역대 최대 투자 규모보다 10% 적은 수준이다. 낸드 가격이 급등하고 공급 부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투자를 늘리지 않겠다고 밝힌 셈이다.
그 배경에는 2022년의 뼈아픈 경험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키옥시아는 약 1조엔을 투입해 욧카이치 공장 생산능력을 확대했지만 곧이어 업체 간 치킨게임이 벌어지면서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을 겪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키옥시아 경영진은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것보다 주주 환원을 병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최근 투자자 설명회에서도 견조한 현금흐름이 예상되는 만큼 적절한 한도 내에서만 투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가격 상승(P)이 물량 증가(Q)보다 더 큰 이익을 안겨주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됐다. 굳이 생산량을 늘리지 않아도 가격 상승만으로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전략에도 시사점을 준다는 분석이 나왔다. 모건스탠리는 낸드 원재료인 웨이퍼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2028년 기준 가격이 현재의 두 배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는 낙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했고, 이 경우 미국에 상장된 샌디스크와 웨스턴디지털의 향후 3년간 주당순이익이 최대 10배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언급됐다.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1위, SK하이닉스가 2위, 키옥시아가 3위 순이다.
이번 뉴스는 반도체 업황이 곧 고점을 찍고 꺼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반박 근거로도 제시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여전히 설비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데, 업계 1위 업체들이 동시에 생산능력을 늘릴 경우 과거처럼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치킨게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장기공급계약(LTA) 확산이 이런 우려를 상당 부분 완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이크론이 최근 실적 발표에서 5년 계약 체결을 언급했고, 샌디스크는 올해 초부터 LTA를 직접 언급해왔으며, SK하이닉스도 내년 물량 상당 부분을 장기계약으로 확보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등 하락장에서도 물량과 가격을 일정 부분 방어할 수 있는 안전판이 마련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과거 2차전지 업계에서 극심한 공급 부족을 우려해 체결됐던 장기계약이 이후 상황 변화로 취소된 전례가 있었던 만큼, 이번 반도체 장기계약을 지나치게 낙관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함께 제기됐다. 다만 배터리는 미래 수요를 겨냥한 선구매 계약인 반면 메모리 반도체는 이미 실사용 중인 수요를 기반으로 한 계약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는 반론도 나왔다. 결국 키옥시아가 스스로 투자 확대를 자제하며 치킨게임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것 자체가, 반도체 업황이 단순한 순환적 호황이 아니라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시각이 제시됐다.